[특집 다큐-르포] 학자금 빚에 묶인 청춘, ‘희망유예지대 강원’

“대출보다 더 아픈 건, 나를 향한 실망이었어요”
강원도 원주의 한 고시원. 전기장판 위에 웅크린 채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김수정(26세) 씨의 눈빛은 무기력과 분노 사이 어디쯤 머물러 있다.
“등록금이 밀릴까 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뛰었어요. 그런데 정작 졸업 후엔 정규직 자리는 없더라고요.”
김 씨는 강원지역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학자금 대출 2800만 원을 갚지 못해 ‘체납자’ 신세가 됐다. 상환 유예 신청을 했지만, 정부 기준인 ‘소득인정액 220만 원 미만’을 충족하지 못해 거절됐다.
“일용직 하루 일당 9만 원을 벌어도 소득으로 치면 기준을 초과한대요. 근데 한 달에 딱 7일만 일할 수 있으면 그게 무슨 소득이에요?”

김 씨는 올해 상반기에만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다섯 번의 ‘연체 경고 문자’를 받았다.
강원 청춘 4,100여 명, 학자금 연체 ‘블랙리스트’
한국장학재단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강원지역 대학 출신 청년 중 학자금 대출 상환이 연체된 인원은 4,162명.
이들이 갚지 못한 금액은 무려 15억 1천여만 원에 달한다.
통계의 배후에는 각기 다른 사연들이 있다.
“부모님이 갑자기 실직하셨어요. 생활비와 등록금까지 다 저한테 떨어졌죠.”
“춘천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취직했는데, 월세와 교통비에 숨이 막혀요.”
“강릉에서 자취하며 공부했는데, 도시에 비해 아르바이트 자리도 드물고 시급도 낮아요.”
청년들은 하나같이 ‘생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문제는 연체 기록이 단순한 ‘채무’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들의 대출 상태를 바탕으로 등급 하락, 금융상품 가입 제한, 취업 불이익까지 연결 짓는다.
‘취업난의 지형도’, 강원도라는 이름의 불모지
왜 하필 강원인가?
강원도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청년 고용률(42.7%)과 높은 비정규직 비율(33.1%)을 동시에 기록 중이다. 산업 구조가 관광과 농업 중심에 머물러 있어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부족하다.
특히 철원, 태백, 영월, 정선 등 내륙 산간 지역은 청년 인구 자체가 급속히 줄고 있으며, 남아 있는 청년들마저 ‘탈강원’을 준비하고 있다.
춘천의 한 공공기관 공채 준비생인 박정훈(29세) 씨는 말한다.
“서울로 이사 갈 형편이 안 돼서 통학으로 고시학원 다녀요. 왕복 6시간 걸리죠. 집세보다 버스비가 싸니까요.”
강원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오고, 이 지역에 남고자 한 청년들에게 돌아온 현실은 ‘잊혀진 책임’이었다.

장학재단은 대출자가 아닌 ‘통계’만 본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장학재단은 학자금 체납자의 실질적인 삶의 질이나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인 기준만을 적용하고 있다.
한 장학재단 관계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책적으로는 유예제도도 있고 상환 조정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통과되는 비율은 20% 미만입니다. 기준이 워낙 엄격하고, 지역 격차는 반영되지 않거든요.”
청년 10명 중 7명은 상환유예 신청조차 포기한 상태였다.
서류 준비, 심사 기간, 온라인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까지 겹치면서 체납은 무기력한 채무로 고착화된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누가 구제할 것인가?
청년 부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오래된 오해가 있다.
“그냥 대출 갚으면 되지, 왜 안 갚지?”
“돈 없으면 왜 대학 갔나?”
이런 시선은 청년 스스로에게도 ‘내 탓’이라는 내면화된 수치심을 남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지적한다.
“지방대 학생들은 애초에 일자리가 부족한 환경에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수도권과의 경제 격차가 청년 채무에 그대로 반영되는 거죠.”
ㆍ이은지 /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방청년정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역 기반 학자금 탕감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했다. 일정 기간 지역 내 공공기관에서 일하거나 봉사하면 채무를 탕감받는 방식이다.

우리는 빚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강원대학교 학생회는 지난 3월부터 ‘학자금 채무 해방 주간’ 캠페인을 진행했다. 1인 시위, 온라인 인증샷 챌린지, 국회 청원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사회가 투자한 잠재력이에요. 빚진 인생이 아니라, 기회가 필요한 삶입니다.”
서울로 향하는 KTX 열차 창밖을 보며 김수정 씨는 말한다.
“강원에서 태어났다고,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 여긴 내 고향인데 왜 떠나야 하죠?”
학자금 체납이라는 이름 아래 묻힌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강원 청년들의 미래와 자존심이다. 이 문제는 더 이상 한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
[전문가 제안]
ㆍ학자금 지역격차 조정법: 지자체별 상환 기준 차등 적용
ㆍ지방청년 채무 리셋 프로그램: 지역근무 조건부 채무 경감
ㆍ금융 이력 회복 지원제도: 연체 이력 삭제를 위한 재기 기회 마련
📌 데이터 출처
한국장학재단 2025년 5월 기준 체납 통계
통계청 2024 청년 고용조사
강원도청 청년정책과 연례보고서